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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MOVE MOVE MOVE FR 누가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가? MOVE! MOVE! MOVE!

누가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가?


글 : 이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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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다'. 


최초의 권리. 거창한 듯한 이 말은 세계 속에 깊게 박힌 뿌리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허락된 움직임은 생물 혹은 비생물의 경계를 넘어선다. 말 그대로 세계, 우주가 탄생하고 생동하는 근원. 부정하고, 결집하고, 소리 지르고, 몸부림치고, 갈라지고, 결박되고, 무리 짓고, 역설되는.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 역사 이전과 그 이후, 매혹과 원초적 욕망들까지.  ‘움직이다'라는 말은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총체적, 근원적 의미를 내포한다. <MOVE, MOVE, MOVE>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기원적 의미부터 충분히 음미해야한다. 단순히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제한적 의미의 ‘움직임'에서 벗어나 그것이 역사적,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점에 있는지에 대한 고찰말이다. 


전유진_최소의 노력 (Minimal Effort)_2016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전유진 작가의 작업이 보인다. 목재의 낮은 경사면. 그리고그 끝에 설치된 마이크. 마이크의 숨을 불어 넣기까지의 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조의 잔물결. 조명에 의해 천장을 포위하는 그림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최소의 노력. 일견 전위적인 행동들을 통해 획득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상은 아주 사소하고 보편적 행위들을 작가의 작업은 요구한다. 그저 올라서고, 발을 떼고, 숨을 쉬고, 흔들렸다. 복잡한 기계적인 매커니즘의 떠올릴 것 없이, 애를 쓰고, 악을 내지르지 않아도 파동은 충분히 만들어진다. 전유진은 이를 통해 묻고, 항변하고, 따진다. 올라서서, 발을 떼고, 숨을 쉬기만 해도 만족할 수 있는 필요조건들이 실행되었는가. 최소한의 노력과 움직임이 거기에 존재했는가. 여기서 ‘최소한’은 충분조건이자 필요조건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며, 그것만은 반드시 필요한. 작가가 바라본 세월호 참사는 이 두 조건 중 특히, 필요조건의 결핍으로 규정된다. 여기서의필요조건은 ‘국민의 건강과 안녕'이 아니다. 완벽한, 다양한, 화려한, 절대적인 조건들이 아닌, 참사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 통치자에게 피통치자가 양도한 개별성에 대한 대가가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해 발생한 참사. 그 속에서 수조의 잔물결이 너무도 쉽사리 만들어지기에, 흔들리는 물결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사건에 대한 권력의 나태와 개인의 방종을 자각하게 된다. 



박철호_추격자들 (poursuivants)_2016



 연이어 이어지고 있는 박철호의 작업은 참사에 뒤엉킨 권력관계의 기묘한 형태를 풍자적으로 시각화한다. 침몰한 세월호의 소유주인 유병언은 기업의 회장, 사이비종교의 교주, 그리고 아해라는 예명을 가진 국립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 작가까지 다양한 지위를 가진 인물이다.  이속에서 작가 박철호는 세월호, 사이비종교, 아해로 표상되는 자본, 종교, 예술이 유병언이라는 하나의 개인으로 접합되는 상황에 주목한다. 작업의 주요 내용은 퍼포먼스를 통해 서술되는데 그 배경이 되는 전시장의 풍경이 이질적인 요소들로 가득치 있다. 전시장의 세 벽면을 가득채운 콜라주 작업들 중 먼저 마주하게 되는 화면은 단순화된 얼굴이 꽉 찬 벽면이다. 세월호의 희생자 수와 동일한 수의 얼굴들. 객관화되고 특징 없은 얼굴들의 연속은 짐짓 공포를 자아내지만 전시의 전체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공포감이 눈, 코, 입의 건조한 표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보다는 타원형의 얼굴 형태의 보편성이 띄며 관람객과 희생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주관적 슬픔을 관람객에게 환기시킨다. 이는 옆면의 콜라주와 연결되어지는데 그 시각성이 한편으로는 조금은 친숙하다. 작가가 보르도의 전시장까지의 여정에서 현지에서 수집한 작업의 재료들은 기존 작업에서 보이는 포토콜라주의 형식과 맥을 같이한다. 물론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불어의 나열은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로 격화되는 점에서 우려를 보이지만 상업적 텍스트 사이의 인물들의 얼굴이 일상적 풍경 속에 발생한 사건의 비극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어진 벽면에는 신원불명의 인물 드로잉과 기묘한 형태의 재단, 조악하기 그지없는 장식물까지 유병언과 그의 사이비 종교를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가 설치되어 있다. 권력 풍자를 업으로 산 말뚝이처럼, 조악하게 양반을 흉내 낸 가면처럼 작가는 자본, 권력, 종교의 허울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루브르를 대표하는 유리 피라미드, 세모그룹의CI, 그리고 동시대 자본주의의 피라미드 계급구조가 상징하는 삼각 형태의 수직적 형상은 단순히 우연성에 의한 결합으로 보인다. 허나 작가는 이 수직적 형상을 선회하는 자본의 은폐된 움직임과 욕망에 대한 가볍고 연속적인 접근을 통해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에 존재하는 필연적인 자본의 출현을 보여준다. 



오재우_Throwing the dice_2016



앞선 두 작가의 작업이 통제집단에 대한 히스테릭과 풍자로 내용을 구성했다면, 전시장 안쪽의 오재우의 영상 작업은 그 성격을 달리한다.  작가 오재우는 국제테러가 만들어내는 파국적 이미지의 풍경을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동시대의 세계는 물리적 거리의 축소, 국경의 유명무실화 등을 통한 움직임의 극대화를 동력으로 삼는다. 허나 최근 발생한 테러들로 인해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개인에 대한 감시 강화, 국경 폐쇄 등 이동 제약을 근간으로 한 대테러 방지법을 입법했다. 작가는 이 같은 사회적 풍경 속에 무용수를 화면 속에 배치한다. 무용수는 둘러싼 풍경 속에 숨어 있는 감시와 통제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상관없이 자신의 몸짓을 이어나간다. 총을 맞는 듯한 움직임으로 끝난 무용수의 몸짓은 움직임의 유예를 폭력으로 연결시킨다. 유무형의 움직임을 근간으로 성장해 온 국제 사회가 개인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하는 모순적인 상황. 작가는 이 같은 상황에 의문을 던지며. 결국생의 회복이 권력에 대한 저항 폭력에 대한 저항, 움직임의 원초적 감각을 회복하는 것임을 인식시킨다. 

세 가지 전시의 내용을 아울렀단 지역민의 퍼포먼스는 재미있는 서사구조를 왼성시켰다. 전유진, 박철호, 오재우로 이어지는 퍼포먼스 진행은 내용 자체는 단조로움과 장식적 측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전시 공간 전체를 활용하여 움직임에 대한 최초의 의미, 그리고 통제 권력과의 관계, 마지막으로 제의적인 형식으로 하나의 잘 구성된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더욱이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전시를 부동의 자세가 아닌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맞이했다. 그 결과 <MOVE, MOVE, MOVE>전은 움직임이라는 것이 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맺으면 존재할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오재우_Throwing the dice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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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다 위에서 ‘움직이지 마라' 라는 말이 뒤집히고 있는 배의 스피커를 통해 퍼진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최초의 권리는 상실됐다. 권력이 개인을 붙잡음으로써 발생하는 주체성의 상실이 어찌 세월호 뿐이겠는가. 푸코식 규율국가든, 들뢰즈식의 통제국가든 그것을 서술하는 단어가 제 아무리 변화한다 해도, 결국 그 목적은 개인을 움직임을 권력에 영속시키는 것이다. 진보된 사회가 더 큰 자율성을 담보할 것이라는 역시 착각이다. 실상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더 은밀하고, 맹목적인 방식으로 감시와 처벌이 인간의 삶에 엉겨 붙는 것이다. 진실로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이 같은 자율성의 탄압, 즉 가짜 자율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통제는 언어를 침묵시키고 움직임을 유예를 지향한다. 주체성의 망각은 은밀한 작동 기법이며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사냥만을 부추긴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뒤에 남겨두고 그것에서 벗어났다고 믿는다. 허나 남겨진 과거들이 다시금 우리의 눈앞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여전히 한 치 밖으로도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된다. 이 같은 진창 속에 우리에 대한 푸코의 대답은 이러하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우리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그렇다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타율적으로 규정된 우리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다.”  



사진) LEE WOO CHANG

영상) HONG MIN 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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